2013년 3월 21일 목요일

Concert @아르코미술관 "Artist's Hat #2 고독한기타리스트" 2013.3.24



공연명 : 예술가의 모자 <고독한 기타리스트>
일시 : 2013년 3월 24일(일) 6p.m.
장소 : 대학로 아르코 필룩스
아티스트 : 고의석, 방승철, NY물고기
내용 : 도하프로젝트 + 아르코미술관  
           실내 버스킹(Indoor Busking Project)



예술가의 모자 두 번째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민중미술 화가 바실리 페로프(1833~1882)의 <Solitary guitarist, 1865作> 그림을 모티프로 하여 진행되는 공연입니다. 바실리 페로프는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 사회의 혼란을 미술로 풀어낸 민중 미술가입니다. 오늘 무대에 오를 세 명의 아티스트는 그림속의 기타리스트와 같은 모습으로 고민하며 여러분들 곁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 하림

Exhibition "Kaleidoscope" 2013.3.16~3.30




전시명 : Kaleidoscope
전시기간 : 2013년 3월 16일(토) – 3월 30일(토)
주최 :  Atelier O
주관 : 도하프로젝트
후원 : 금천아트캠프
전시작가 : Souffle(김지현, 도재명)
부대행사 : 오프닝 3월 16일 (토)  2-6p.m.
                     클로징파티12월 8일(토) 1p.m.



Media & sound art group, SOUFFLE
도재명과 김지현은 2008년 도재명이 이끄는 밴드 <로로스>의 공연의 영상 작업으로 처음 작업을 함께하기 시작했으며, 사운드 아트에 관심이 많던 뮤지션과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던 미디어 아티스트는 2012년부터 평소 호흡처럼 천천히 작업을 이야기하고 만들어보기 시작하였다.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사운드로, 이미지로 만들어 접점을 찾는 작업을 이어가며 가장 흥미로왔던 부분은, 머리를 쓰지 않고 철저히 작가의 감정으로부터나온 경과물이라는 것이었고, 더불어 이제껏 두 작가가 각자 해오던 작업과는 사뭇 다른 타입의 작업물이면서 그로인해 둘의 조합이 새롭게 파생되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Kaleidoscope>전시는 그간 두 작가가 나누었던 공통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이제는 손에 쥘 수 없고 다시 잡을 수 없는 지나간 시간, 반짝이던 순간에 대한 노스텔지어이며, 모두에게 각자의 상념에 젖을 시간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다시 잡을 수 없지만 모두에게  다르고 모두에게 반짝였을 순간들, Kaleidoscope

2013년 3월 3일 일요일

Exhibition "LHJ 歸國展" 2013.3.3~9



전시명 : LHJ 귀국전
전시기간 : 2013년 3월 3일(일) – 3월 9일(토)
주최 :  Atelier O
주관 : 도하프로젝트
후원 : 금천아트캠프
전시작가 : 이형자
부대행사 : 오프닝 3월 3일(일)  3p.m.




<LHJ 귀국전> 제목에 부쳐
일단 부담 없이 전시하고 관람하였으면 해서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 무의식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칠팔십 년 대에나 소통되었던 외래문화에 대한 과잉친절이 불행하게시리 현시점에서도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분 나뿐 앙금을 확 휘젓는 기분으로 저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던지는 자조 섞인 유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실제로는 독재시대의 문화검열을 피하기 위해 귀국전이란 말을 사용했다더군요. 당시에는 음악분야에서, 특히 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통상 귀국전을 하게 되므로 특히 클래식은 검열대상에서 검림돌이 되지 않았기에 다른 공연자들도 귀국전이란 제목으로 공연 심의를 통과하기위해 서류를 넣었다고 들었습니다. 유토피아나 천당 같은 곳에 가고 싶었으나 난파되어 돌아온 은하철도 구구구 같은 이미지죠. 덧붙이면 실제로는 어디서 유학하거나 장기체류도 없던 내가 과연 어디서 귀국 했겠습니까. 집구석에서 골방에서 변방에서 언더에서 뭐 그런 모든 경계 밖의 장소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유에서 떠돌다가 스스로 원하는 속박이거나 소통을 시도하고자 하는 의미도 되겠군요. 실제로는 그런 곳은 없고, 또한 있다고 착각했고 꿈을 꾸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항해했던 곳은 지긋지긋한 어둠이거나 가난이나 외로움이나 간혹 희망이기도 하겠지요. 그게 지구 밖 어디라고 믿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현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정쩡하게 떠돌아 다녔을 시간들이죠. 어쨌든 <이제는 거울앞에 선 내 누이여!>입니다. -LHJ


불가능 한 것을 꿈꾸는 모든 것들이 부르는 연애시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언제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묘지같은 도시의 붉은 십자가 아래 모여 어릴 적 부터 들어오던 천당과 지옥이야기나 혹은 아주 오래전 하늘이 맑아진 이래 그 아래에 살던 사람들의 하늘 위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었을까. 그 생각의 기원을 고민하기엔 이미 그 실체가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머릿속에 유전자의 고리가 되어 박혀있게 되었다. 어릴적 티비에 나오던 <은하철도999>의 어두운 허공에 난 기찻길은 아찔하게 보였다. 분명 그 공간은 어디로 떨어진다 해도 그것이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날고 있는 것인지 조차 알수 없는 허공이다. 종착역이 어디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허공을 칙폭거리며 달리고 있는 장면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함께 그려졌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결국에 어디서부터 돌아온 것인지 모를 상황에 이르러서는 멀리 떠나간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허무함에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을 마친 이가 그 충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면 열차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된다. 그 곳에 두 팔을 벌리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금발의 여인은 유토피아를 꿈꾸며 떠도는 모든 존재들이 그리워 낭송하던 연애시의 주인공이다. -하림